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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uay 뉴스

휘델 사발라 납치사건.



작년 10월 15일,  Fidel Zavala(46세)라는 농장주가 파라과이의 꼰셉시온주에서 파라과이 국민군이라 자칭하는 괴한들에게 납치됐었다. 그는 납치된지 94일만인 그제 풀려났다. 사진의 가운데에 있는 수염남이 바로 휘델 사발라.

그의 납치사건 이후 여지껏 있었던 많은 납치사건과는 좀 다른 과정을 거쳤는데 그 중 몇가지를 적어본다.

1. 휘델 사발라 납치 며칠 후 부터 많은 차량이 차의 안테나나 뒷부분에 흰 리본(흰 천조각)을 달고 다녔다. 몇해 전에 있었던 전직 대통령의 딸의 납치 후 살해사건때는 검은 색 리본이 등장했었는데 이번에는 사발라의 자유를 기원하는 흰색 리본이 조금씩 조금씩 모든 차량에 달려졌다. 과장없이 거의 열대 중에 한대 이상에는 자발적인 흰색 리본이 걸렸다. 의아했던 것은 여지껏 많았던 납치사건에는 없었던 그런 모습들. 얼마나 돈이 많은 사람이길래 이런 움직임을 낼 수 있었을까 싶었다. 여자도 아니었고, 어린이도 아닌 건장한 성인 남성의 (파라과이의 흔한) 납치사건에 정재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특이한 사건이었다.

2. 역시 1의 연장선이겠지만 여지껏 있었던 납치사건과는 다른 정부의 대응 방식. 이전에 통일교 일본인 간부의 납치사건때도 군대를 동원하면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좀 더 강력한 대응이 있었다. 무기를 새로 구입해오면서 사발라가 있을 만한 지역을 군경을 동원해서 샅샅히 훑고 모든 정치권이 빠른 해결을 강조하며 정부와 군경에 압력을 가했다.

3. 정치권에서 있었던 이른바 '납치 방지법' 제정 움직임. 이 납치 방지법이 어떤 내용을 갖고 있었냐하면 일단 한 가족의 일원이 납치가 되고 공권력이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납치된 일원이 있는 가족의 모든 재정을 동결 시킨다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납치범들이 납치를 하더라도 몸값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의미가 없으니 납치 사건이 줄어들 것이라는 내용인데, 이 법안은 정부와 여당 및 일부 야당에서 강력히 밀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법안을 냈던 쪽에서 들었던 이유중에는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같은 내용의 법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는 것. 내 개인적인 의견은 애초에 납치범들이 납치된 이의 가족에게 하는 최우선 요구가 공권력에 신고를 하지 말 것인데, 공권력에 의해서 몸값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바로 납치범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협상의 여지를 없애 버리는 것이 되고 납치된 이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휘델 사발라의 가족이나 이전에 납치된 적이 있었던 부유한 집안들에서도 이 법안의 통과를 반대하고 나섰다. 현재의 납치 상태 유무를 떠나서 정부가 자신들의 재정에 관여하는 것을 달가와 할 리 없을 터였다.

4. 사발라가 풀려나기 약 일주일 전에 있었던 쇠고기 분배 해프닝. 파라과이 국민군은 사발라가 풀려나기 약 일주일 전 자신들이 지정하는 지역에 소 30마리를 잡아서 그 고기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나눠줄 것을 사발라 가족에게 요구했다. 그 요구는 들어져서 일부 인디언(토착 원주민)과 생활이 어려운 지역, 아순시온에서 범죄율이 제일 높은 판자촌 등에 고기가 전달되어졌다. 그 과정에서 한 부족은 고기를 받기를 거부했고, 또 고기를 받은 다음날 그 고기가 파라과이 국민군의 요구로 전달되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받지 않았을 것을 오염된 고기를 자신들에게 주었다며 행정부처 앞에서 받은 고기를 버리는 단체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도 행정부에서 그런 움직임을 알고 있었으면서 애초에 막지 않았음을 성토했다. 아직 교육수준이 높지않은 이곳 파라과이에서 납치사건이 자신의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을 빈민층과 소외계층에 심어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생각 못했다면 이 정부의 수준도 알아줄 만한 것. 그런데 이번 고기 분배에 종교단체도 있었다는 사실은 한심한 일. 

5. 이틀전 휘델 사발라는 풀려났는데 납치범들과 어떤 내용의 협상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나는 그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타난 그의 모습은 너무나 말짱해서 놀랐다. 이전에 납치되었다 죽은 전직 대통령의 딸인 쎄실리아 꾸바스나 일본인 통일교 고위직들은 한여름 40도가 넘는 이곳 파라과이에서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땅을 파고 만든 구덩이에서 있었다. 물론 먹을 것도 형편없었고 그래서 며칠 만에 풀려났었던 이들의 몰골이나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것에 비하면 휘델 사발라는 장기간 납치되었던 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길게 자란 그의 수염정도였다. 역시 돈과 권력이 있으면 납치가 되어도 대접을 받는 것인가?

휘델 사발라가 풀려난 그 날 밤. 파라과이의 번화가에는 그의 자유를 축하하는 차량행렬이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 모습이 보여졌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인터뷰 하나.

한 젊은 아가씨가 '빨리 EPP(파라과이 국민군) 놈들을 잡아서 한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저 강렬한 증오가 부유층의 느낌이라면 반대편에서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이도 있으리라는 그 섬뜻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