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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정당당함이 빛을 본 한일전.

사실 나는 야구 준결승 한일전에서 일본이 이길 줄 알았다. 아니 일본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쿠바전에서 쿠바를 상대로해서 이겼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대진표 덕분에 예선 삼사위가 준결승전에서의 상대팀을 고르는 상태가 되버렸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과 일본은 서로 지기위한 게임을 티나지 않게 하느라 0:0 연장전 승부치기까지 해버렸다.
일본 대표팀의 호시노 감독은 경기에 패한 직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자국 티비와의 인터뷰에 응했고 일본 네티즌들도 절대 미국을 이기면 안된다고 하더니 경기 결과에 만족해 하는 글들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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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쿠바도 한국전을 앞두고 설렁설렁 해도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객관적으로(?) 최고 강팀인 자신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서로 이기기 위해 피터지게 싸울 것이고 그러한 상황은 하루 뒤 경기를 앞둔 쿠바나 한국을 위해서 명백히 유리하니까. 그런데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 물론 5명의 투수를 시험 삼아 던지게 했던 쿠바나 최고 에이스를 내보내지 않았던 한국이나 전력싸움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누가보아도 자신에게 불리한 패를 스스로 선택했다.

나는 이것이 불만이었다. 한국이 그때껏 전승으로 올라왔더라도 전 세계 누구에게 물어봐도 한국은 준결승 네팀 중에 꼴찌로 꼽히고 있었다.(사실 쿠바를 이기고 한국이 예선을 1위로 마쳤을때도 외국의 도박업체가 꼽은 한국의 우승 배당률은 8/1, 미국은 5/1, 일본은 4/1, 쿠바가 1/2로 일본의 그것의 사분의 일 밖에 되지 않았다.)
절대 유리하다고 말 할 수 없는 상황의 금메달을 향한 레이스에서 자만심을 내비친 것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경기 전, 포털의 게시판에는 한국이 쿠바를 최선을 다해 이겨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라는 말과, 한국은 쿠바에 져서 예선 삼사위 팀이 서로 진빠지게 싸우게 해야한다는 두 의견이 있었고, 난 후자가 옳다고 믿었다. 수영의 박태환도 초반 레이스보단 후반에 더 강한 것도 작전이고 단순해 보이는 역도도 남에 페이스를 보면서 작전을 세운다. 한국 야구의 페넌트레이스에서도 많은 경기중에 꼭 잡아야 하는 경기, 꼭 이겨야 하는 경기가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에 맞을진 몰라도 모든 스포츠엔 전쟁과 같이 작전이 있고 후퇴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실을 모르는 감독은 질 것이고 몽상가가 이겨서도 안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난 밤에 한일전을 읽고, 들었다. 한국시간 낮 11시 반에 시작한 야구의 시간은 파라과이 시간으로 밤 10시 반이었다. 원체 느린 인터넷(랜이지만 모뎀속도) 때문에 인터넷 중계 방송은 포기했고 다음의 문자중계를 봤다. 문자중계의 응원판엔 양국의 응원 숫자가 표시되는데 경기 시작 초반엔 한국 8만 대 일본 6만 정도로 이곳이 한국의 사이트가 맞나 싶었다. 그만큼 일본 야구를 더 높이 사는 한국인이나, 나 같이 김경문 감독의 전술에 불만을 가진 이가 많았던 듯 싶다.

이성이나 생각은 어찌됐든 일단 경기가 시작하고 문자중계를 읽어가며 초반에 한국이 1:0, 2:0으로 일본에 져서 끌려갈 때는 속이 달았다. 경기전에 가졌던 생각과 경기 시작후 밤 12시가 넘는 시간에 네티즌의 게시판 글보다 늦게 알리는 문자중계를 보겠다고 새로고침을 연신 눌러대는 내 모습을 보다, 나는 피식 웃었다. 영락없는 coreano군. 이러면서.

1시를 전후해서 한국이 8회에 1점을 내고 다시 동점을 해내며 나는 조급해졌다. 갑자기 문자중계가 되지 않고 게시판도 뜨지 않는 것이다.(아마도 나처럼 야구를 읽고(!) 있던 이들이 꽤 됐나 보다.) 그래서 급히 인터넷 라디오를 검색으로 찾아 다운받아서, 이승엽이 홈런을 치고 난 후의 8회 말 한국 공격은 라디오로 들을 수 있었다.(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는지!!!)

내가 다운 받은 라디오.
용량이 681KB에 설치가 필요없고 라디오와 TV가 나온다.
올림픽의 야구게임은 SBS 러브에서 들을 수 있었다.

며칠전에도 한국의 야구(왜 꼭 여기 시간으로 자정 이후에만 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게시판에서 보느라 새벽 세시가 다 되서 잠자리에 들었다가 마누라한테 '올림픽이 좋으면 방 밖에서 자! 확 문 잠가 버릴 팅께.' 라는 반 협박과 쿠사리를 들었던 지라 잽싸게 방에 가서 마누라에게 '오늘은 꼭 중요한 시합이라 보고 한시반까진 올께' 하곤 허락(?)을 받고 왔다.

그렇게 일본의 9회초 공격이 무득점으로 끝나고 한국의 결승 진출을 알고는 편한 맘으로 두시가 되어서 자리에 누워선 나름대로 한국야구에 대해 생각을 하며 반성도 해봤다.

무협지로 얘기하면 정파와 사파의 싸움이었다고나 할까? 한국팀을 만나려, 미국에 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일본과 불리할 줄 뻔히 알면서도 정정당당한 싸움을 한 한국.
20타석이 넘는 동안 삼진과 병살타를 날리며 1할대에 턱걸이하는 이승엽을 끝까지 믿고 써줘 자신의 부진함을 만회할 수 있게 해준 감독. 그런 감독이 자신감을 주기 위해 세워준 경기마다 구원으로 나서서 방화를 하는 한기주가 있었음에도, 그런 감독과 동료에게 실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다시 점수를 따내 동료의 패전위기를 막아주는 결속력을 가진 한국 선수들.

지나친(?) 바램이 있다면 한국팀이 그 능력과 결속력, 동료애를 가지고 쿠바전에서도 초반 대량 득점을 해서 한기주가 나서서 마무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시합이 될 수 있음 한다.(꿈이 야무진가?) 그렇게 하면 김경문 감독의 믿음도 온전히 보상받고, 한기주의 병역면제에 대해 있는 약간의 흠집(간혹 보이는 댓글들)을 없애는 화룡첨점이리라.

(운동선수 병역면제에 별로 동의 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번 한국 야구팀만큼은 어떤 보상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현재의 한기주 포함해서.)

처세술과 성공학이 판치며 순진함이 바보같음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김경문 감독은 우직함, 믿음, 뚝심에 자신의 지략을 섞어 정정당당함이, 처세술과 잔머리를 이길 수도 있다는 권선징악의 소설을(사실 한국의 전 모든 예선경기가 스릴넘치는 드라마였다.) 써냈다. 사실 쿠바전은 그 소설의 에필로그가 아닐까 한다. 현재 전적 7승 1패, 올림픽 야구 역대 4개의 금메달 중 세개를 가져간 쿠바와의 마지막 경기는 승자가 누가 되든, 쿠바로서도, 한국으로서도  후회없는 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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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