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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uay 이민생활

변해버린 파라과이



며칠전, 밤에 가게 손님과 시비가 있었다. 정신이 좀 어떻게 된 인간같아서 상대하지 않고 있다가 폭발해서, 멱살을 잡고 한대 치려다 참고 넘어갔다. 제 정신이 아닌 인간이서, 그 날 밤, 내 권총을 꺼내서 오랜만에 기름칠을 했다.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은 대략 예측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을 상대할때는 모든 일에 조심해야 하기에....
별일 없이 지나갔다.

며칠 뒤, 꿈자리가 안좋았다. 막내녀석이 얼마전 아픈 이후로 먹고 있는 약이 떨어져서 약국에가서 약을 사주려고 식구들과 차를 타고 나왔다. 안좋은 꿈 생각에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약국 앞에 차를 세우고 아내가 아이들과 약을 사러 들어간 사이, 차 유리창을 열고 밤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 하나가 유리창을 짚더니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한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술을 마셨는지, 약에 취했는지 눈이 풀렸다.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빈 옆 좌석에 던져 놓으며 '꺼져!' 했다.
눈풀린 녀석은 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자기 티를 들어올린다. 허리춤에 칼이 있다. 내가 씩 웃으며 '해 보자고'하며 권총에 손을 갖다 댔더니 잽싸게 가버린다. 총을 가지고 나오기를 잘했다. 내 꿈이나 불길한 예감은 잘 맞는 편이다.


교회에서 밥을 먹는데 옆에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사람을 데리고 파라과이의 치안이 안좋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두명이서 한국에서 이제 막 온 사람에게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는데 두명 다 한번이상 가방을 빼앗긴 적이 있나보다. 어차피 아순시온에서만 있을 신참자에겐 별 해당사항이 없을텐데....

아직 아순시온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강도를 당하거나 한 적은 없다. 차를 산지 삼년이 안된 탓에 버스를 참 많이 이용했었는데.... 아순시온을 벗어나는 장거리 버스를 타야하는 이들은 강도를 만날 가능성이 높긴 할 것이다. 찌질한 버스 안에 돈 많기로 유명한 Coreano라면.....

이민온지 만 이십년이 넘는 우리집은 강도 2번, 절도 2번을 당했다. 내가 총을 꺼내 들어야 했던 것은 이번과 함께 두번째.

약 십오년전 파라과이는, 지금은 우범지대로 유명한 공원에서 밤새 잠을 자도 아무일이 없었다. 언젠가 집을 나와 그 공원 벤치에 누워 자고 있었더니 아침에 경찰들이 깨운다. 근처의 집주소를 대 줬더니 그냥 갔었다. 이제는 꿈도 꿀 수 없을 일이다. 사람들이 말한다. 십년전의 금융위기와 함께 파라과이가 변했다고....

십년전의 파라과이는 담이 낮았고, 밤이면 사람들이 집앞에 나와 앉아 더위를 피하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십년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에겐 파라과이가 여전히 여유와 낭만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이에게 파라과이는 낯설고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