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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9. 09:34

목사들이 욕을 먹는 이유

최근에 개신교의 목사들이 욕을 먹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전 포스팅에서 처럼 파라과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 국내에서도 이런 현상은 동일하다. 최근에 신문에 났었던 '한국 개신교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성인 10명 중 2명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만 봐도 개신교가 불교나 카톨릭에 비해 얼마나 한국 사회에서 불신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요즈음에는 성직자라는 호칭보다는 직업으로서 목사라고 불리는데, 사실 대화중에 '목사가 어쩌고'하는 소리에는 존경심보다는 비앙냥이나 그럼 그렇지 정도의 체념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은 목사라는 봉사직을 택한 사람들이 봉사가 아닌 밥벌이로서의 직업을 택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보니 목사라는 사람들이 세상의 죄를 짓고 신문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다. 사실 요즘 사찰의 중(스님이라고 하려다 목사님이라고는 안하면서 스님이라 하긴 머해서)들도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그 정도가 목사들보다 덜하고 또 위에 인용했던 기사를 봐도 사찰에 대한 신뢰도가 개신교에 대한 그것에 거의 두배에 가깝다.

개신교의 목사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카톨릭의 신부나 사찰의 중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욕망에서 자유롭다.(물론 자유롭다는 뜻은 욕망에서 해방됐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욕망을 종교의 교리에서 어느정도 허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삼대 욕망을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 했다지만, 나는 여기에 지배욕(권력욕)과 소유욕을 더하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개신교는 (성욕은 그렇다 치고) 카톨릭이나 불교에 비해 지배욕, 소유욕에서 자유로운 정도를 넘어 일반인들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다. 남미나 유럽에서 카톨릭의 지배욕이나 소유욕도 만만치 않지만 한국사회에서 개신교의 욕심도 만만치 않다.

성경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되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정통 개신교에서 목사 다음의 지위에 있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같은 교회의 교인이 장관이 되고 또 주요 요직을 맡고 있다. 또 그런 지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서도 역대 정권의 누구와 비교해도 많다. 오죽하면 비기독교인이 종교로 차별을 받을까봐 '공직자 종교차별신고센터'라는 것이 생겼을까? 지금 한국에서는 개신교도들은 거의 모두 넓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목사들이 돈을 잘 벌고 잘 사는 일은 종교인으로서 별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다. 그렇다고 돈 없이 허덕이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교인들의 평균 수준의 삶만 영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얘기다. 예수님이 '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말을 가슴에 담고 있다면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주위에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은 지천에 깔렸는데 '내 몸같은' 이웃의 배고픔은 눈감고 내 계좌에 돈을 쌓아놓을 수 있을까? 사실 일반인들이 역지사지 하기가 어려운만큼, 위에 계명을 지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직자라면, 교인을 돌봐야(!)하는 위치라면 테레사 수녀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파라과이에 있는 목사들과 선교사들의 자녀들의 많은 수가 파라과이에서도 제일 좋은 축에 속하는 학교를 다닌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학교 측에서 특혜를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비싼 학비 임에도 그렇다. 일반 한국 교민들의 자녀들은 이곳 사람들의 자녀들과 비교적 보통의 학교를 다니지만 목사나 선교사들의 자녀들은 좋은 학교를 다니고 비싼 과외를 하고 한국에서도 보내기 힘든 미국이나 그 외의 선진국으로 자녀를 유학보내기도 한다.  목사나 종교인이 된다는 것이 내 자식에게 훨씬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되는 한은 복음이 온 세상을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을 바꿨던 혁명가들은 민중과 같이 했었다. 예수든 간디든 마드레 테레사든 말이다.

푹신한 소파와 좋은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선교를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위에 대화 내용은 해외에 봉사나와 있는 딸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해 아버지와 어머니, 딸의 대답이 차례로 적힌 것이다. 원 글의 내용은 봉사 나와있는 곳의 생활 수준이 낮다보니 묵고 있는 집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상한 요거트를 음식으로 내놓는데 참고 먹었더니 속이 안좋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런 딸의 글에 아버지의 답글이란 것이 '발효식품이니 유효기간 지난 건 발효가 더 잘 된거 아냐? 안심하고 먹어! 속청소 잘해 줄 것 같은데' 라니. 이걸 보고 읽은 그 순간은 참 야속한 아버지구나 했다가도 혼자 해외에 나가 있는 딸이 걱정이 많이 되면서도 어차피 곁에서 돌봐 줄 수 없다면 꿋꿋하길 바라는 현명한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궁굼한 마음에 이전 글부터 꼼꼼히 보곤 그 아버지가 목사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보곤 혼자서 꿋꿋히,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는 딸과 그런 딸에게 적절한 멘토가 되어 주는 목사 아버지.

본받을 만 하지 아니한가?










Trackback 0 Comment 2
  1. Favicon of https://tjryu.tistory.com BlogIcon 목운 2009.01.09 09:5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스님들에 대한 경멸적 속담은 대부분 고려때 권력과 밀착해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때문에 생겼다고 봅니다. 조선 시대에 많은 핍박을 받으며 훌륭한 스님이 많이 나오고 나서야 겨우 대접을 받는 모습에서 한국의 개신교가 배워야 할 겁니다.

    • Favicon of https://paraguay.tistory.com BlogIcon BoBo 2009.01.09 11:33 신고 address edit & del

      님이 말씀하시는 훌륭한 스님만큼이나 훌륭한 목사님도 많이 나왔음합니다. TV에 재산문제로 자주 나오시는 그런 유명한 목사님 대신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