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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uay 이민생활

누군가 내게 총을 겨눌 때


언젠가 야후에서 '5살 아이가 3살 아이에 총격,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일주일 넘게 특종이라고 걸어논 적이 있었다. 파라과이에서 그보다 더한 사건도 접한 적이 있었던 나로서는 그런 뉴스가 세계적 특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사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 사고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20년전, 파라과이에서 5살 짜리 꼬마가 연년생 남동생을 총으로 쏴서 동생이 죽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짜코지방으로 사냥을 다녀온 형제의 아버지가 장전된 채로 산탄총을 부인에게 넘겨주면서 발생했다. 총을 받아든 아주머니는 총을 집안에 둔채 잠시 하던 일을 계속 했고 총을 발견한 큰 아들이 동생에게 총을 겨누면서 장난을 치다가 장전된 총알이 동생의 관자놀이에 발사된 것이다.
나는 그때 사람의 피가 상당히 멀리까지 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집 밖에서 보이는 사건 현장의 담장에는 마치 벽 아래에서 위로 유리컵에 물어 담아 뿌린 것처럼 2m가 넘는 높이에 피가 튀어 있었다. 총을 맞은 아이는 1m도 안되는 꼬마 아이였는데 .
옆집에 살던 잘 생긴 4살 짜리 동생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5살 형은 얼마 뒤 사건을 잊었다. 가족들은 남은 아이 하나를 위해서 쉬쉬 했지만, 지금은 25살이 되었을 그 아이도 그 때의 사건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 파라과이에서 있었던 총기사건, 사고로는 몇년전 당시 파라과이의 부통령이 자신의 경호원의 총에 다리를 맞은 사건(내 기억으로는 총이 떨어지면서 발사된것으로 안다.), 작년인가 파라과이의 외무부 장관을 했던 여자가 미국에서 남편의 실수로 발사된 총을 복부에 맞았던 사건, 크리스마스를 맞아 폭죽을 터트리는 사이 폭죽소리에 묻혀서 발사된 총알에(여기서는 그런 총알을 '길잃은 총알'이라고 한다) 해마다 다치는 사람들.

십 몇년전, 한 한인 가게에 강도들이 든 적이 있었다. 그 한인 가게의 주인은 한국에서 헌병이었던 분. 주인부부를 묶어놓고 집안의 금품과 차량을 훔쳐간 도둑을 가게 주인이 다른 차량으로 추적, 대로에서 총격전 끝에 한명을 죽이고 한 명인가 두 명을 붙잡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는 정당방위가 아니었기에 그 가게의 주인은 꽤 오랜 기간 법정공방을 치뤄야했고, 죽은 강도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복수 우려 때문에 불안해 하다가 많은 돈을 쓰고는 결국 미국으로 이주했다.


마지막으로 내 경험. 미국에서 흑인폭동이 있은 후, 총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나는 권총 한자루를 구입,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데 마당이 있었던 이전 집에서는 마당 벽 한쪽에 두꺼운 나무 토막 하나를 놓고 사격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때 가지고 있었던 총은 22구경 리볼버였는데 총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다.

몇년전, 한산한 주말 오후, 가게에 허름한 차림의 남자 한명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물건을 고르는가 싶더니 나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다. 그러다 언쟁이 높아졌고, 그 남자는 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하더니 자신의 가방을 열고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총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안 나는 먼저 카운터 옆에 뒀던 권총을 꺼내 남자를 겨냥했다. 그 남자가 총을 찾아서 손에 들었을 때, 이미 나는 카운터 뒤에 몸을 숙인채 그 남자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널 여기서 죽이면 정당방위니 개죽음 당하지 말고 나가라'라고 해주었다.
내게 총을 겨냥했던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치며 가게 밖을 나갔으나 그 잠시 잠깐의 순간 내 머릿 속은 얼마나 복잡했던지. '저 인간이 총을 쏘면 쏴야되나. 쏘지 않으면 장난감 총이나 총이 안되는 줄 알고 더 난리 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나도 총을 쏘자니 총격전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가게만 망가질텐데. 저 인간을 쏴서 죽이거나 다치게하면 나도 경찰서와 법원에 시달릴테고, 보복 우려로 편히 살지 못할텐데.'등등. 머릿 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팽팽 돌고 있었다.

그 권총맨은 욕을 하며 도망갔고, 나는 한순간 긴장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았다.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서로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는 사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하두 많이 봐와서 폭력성에 둔감해져 그런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총이 없는 한국에서 총 대신 집에 흔하디 흔한 과도나 식칼에 위협당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총이 흔하더라도 그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내게 총을 겨눈다는 사실은 정말로 다시 경험해 보기 싫은 일이었다.

그 때 이후, 총기가 자유로운 나라에선 나 역시 총기가 하나쯤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확고히 들었다. 건강한 남자라면 칼을 든 상대가 내 앞에 있더라도 위축은 들지언정 어떻게 상대해 볼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총 앞에선 정말 방법이 없다. 그 토요일 오후, 나와 권총맨이 대치하고 있는 몇 분 사이 단 한사람도 가게에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그때 내게 총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권총을 든 상대에게 형편없이 얻어맞았을까? 아니면 강도였을지 모를 그 인간에게 털렸을까? 아니면 총을 맞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총기소지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장난감 권총을 좋아라 갖고 노는 내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걱정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