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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o생각

스킨쉽


 

애들을 키우면서 가끔씩 느끼는 일인데 애정과 스킨쉽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뱃속에서 열달간 있었던 아가는 엄마 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엄마만을 찾는다. 아가의 세상은 엄마와 일체였다가 자궁에서 나와서는 엄마의 품안이 된다. 아가는 온전히 온몸이 엄마 품에 안겨야지 안심한다. 그렇게 아기를 안고있는 엄마도 아가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기가 크면서 엄마에게 의존하는 마음은 스킨쉽의 빈도가 줄어드는 만큼 멀어진다. 아이를 목욕시킬 때까지는 아직 내 애기지만, 어느덧 커서 지혼자 할 때가 되고, 엄마와 아빠보다는 혼자 자는 것이 좋은 때 쯤 되면 아이의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은 다른 상대를 찾게 된다.

내 큰 녀석은 이젠 아빠에게 주먹을 쥐곤 놀자고 덤빈다. 사내녀석이라 발차기와 주먹질이 꽤나 재밌는 모양이다. 요즘에 와서는 이 아빠를 섭섭하게 할 때가 제법 있다. 첫 아이 인지라 목욕도 내가 도맡아 시켰었고, 똥이 되서 안나올 때는, 내가 지 녀석 똥꼬에서 응아를 빼내주기도 했었는데, 그런 아빠를 있는 둥 마는 둥 할때는 여간 섭섭한게 아니다.

반면에, 둘째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 요즘 나온 뱃살때문에 가게 문을 닫고 옆방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 어젯밤에는 새벽 두시에 아빠를 찾아 울어제끼는 둘째 때문에 땀에 젖은 몸을 땀만 닦아내곤 샤워도 하지 못하고 자야했다. 꼭 지 아빠가 옆에 있어야 되고, 내 목을 꼭 끌어 안는다. 반대 편을 보고 자다가도 가끔씩 손을 내 쪽으로 뻗어, 아빠의 존재를 확인하는 녀석. 심심하면 '아빠 좋아'하면서 가슴팍에 뭍히는 둘째를 보면 가슴이 녹는다.

이렇게 너무 다른 첫째와 둘째를 보면서 무엇이 이렇게 다르게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이 스킨쉽. 첫째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와 소원해진 듯 하다. 이전에 집에서만 있을 때는 아빠와 장난도 치고 많이 놀았는데 이제는 오전, 오후 학교에 다니다보니 그럴 일이 많이 줄었다.

나는 되도록 아이들에게 애정 표현을 많이 하려고 한다. 많이들 컸음에도 입술에 뽀뽀해주며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는데, 큰 녀석은 이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나보다. 학교에서 또래 여자아이에게 '결혼하자'고 하거나 붙잡고 뽀뽀를 했다는 것이다.
지딴에는 애정의 표현이었을테지만 분명히 해 줄 필요가 있어서 어제는 정색을 하고 말해주었다. '가족들끼리만 뽀뽀하고 안아주는거지, 친구들한테는 그러면 안된다. 친구들이 싫어할 수도 있고,친구의 엄마, 아빠도 싫어할 수 있다. 아빠와 엄마도 네게, 다른 사람이 무턱대고 뽀뽀하면 싫다.'라고 분명히 이야기 해 주었다.

애정 표현이 서툴었던 가정에서 자랐던 나와 아내를 생각해서, 되도록 자주 스킨쉽을 아이들에게 했던 것이 의외의 문제를 일으키는 듯.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생각할 것이 많다.